약수동 잡학사전 — 알수록 재밌는 동네 이야기
신라호텔 자리의 비밀부터 '며느리도 몰라'의 실화까지 — 출처로 확인해가며 모은 약수동·신당동 잡학.
약수동·신당동은 파면 팔수록 이야기가 나오는 동네입니다. 전설은 전설로 표기하고, 사실은 공식 자료와 보도로 교차 확인해가며 '오, 이건 몰랐네' 싶은 이야기만 골라 담았어요.
이름에 숨은 이야기
떡볶이의 성지 신당동의 원래 한자는 '새 신(新)'이 아니라 '귀신 신(神)' — 신당동(神堂洞)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광희문(시구문)은 도성 안 시신이 나가던 문이라, 문밖에서 넋을 달래는 무당들이 모여 살며 신을 모시는 당집(神堂)이 늘어난 것이 동네 이름이 됐죠. 갑오개혁 무렵 발음은 그대로 두고 한자만 新堂으로 바꿨습니다. 힙당동의 아이콘이 된 칵테일 바 주신당(酒神堂)은 바로 이 원조 한자를 부활시킨 이름이에요.
약수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버티고개엔 전설이 둘 전해집니다. 하나는 도둑 소굴로 악명 높던 이 고개에서 야경 돌던 순라꾼들이 "번도(番盜)!"라 외치던 소리가 번티→버티가 됐다는 설 — 오죽하면 험상궂은 사람에게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이라는 욕까지 있었대요. 다른 하나는 풍수 전설인데, 삼각산 인수봉의 부아암이 '아이를 업고 달아나는 형상'이라 서쪽엔 떡고개(아현)를 둬 아이를 달래고 남쪽엔 '나가면 벌주겠다'는 벌아령(伐兒嶺)을 둬 붙잡았고, 그 벌아령이 버티고개가 됐다는 이야기. 서울 지형 전체가 한 편의 육아 드라마였던 셈이죠.
청구역의 '청구(靑丘)'는 일본식 지명을 지운 흔적입니다. 일제강점기 이 일대 고급 주택지는 '사쿠라가오카(櫻ヶ丘)', 우리 음으로 '앵구'라 불렸는데, 해방 후 일본식 동명을 없애며 언덕 구(丘)는 남기고 벚꽃 앵(櫻)만 '동방의 우리나라'를 뜻하는 청(靑)으로 바꿨어요. 청구영언·청구도의 그 '청구'가 벚꽃 언덕을 밀어낸 대타였던 겁니다.
역사의 반전
지금 신라호텔 자리엔 1932년 일제가 세운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 '박문사'가 있었습니다. 광화문 석재와 경복궁 건물을 뜯어다 썼고,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을 통째로 옮겨 절 정문으로 삼았죠. 해방 후 그 자리에 국빈 숙소 영빈관이 들어섰다가 신라호텔이 됐는데, 호텔 정문이 흥화문을 본뜬 모양인 것이 그 흔적입니다.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지어줬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지금도 도는 루머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 설계·구조·시공 모두 국내 손으로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돔형 실내체육관이에요. 2011년엔 당시 대통령까지 필리핀 방문 중 이 낭설을 언급해 루머가 더 퍼지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죠. 이곳은 박치기왕 김일의 홈링이자 '체육관 선거'라는 말을 낳은 현대사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장충체육관 뒤 다산성곽길 성벽을 유심히 보면 '생(生)', '곤(崑)' 같은 한자가 새겨진 돌(각자성석)이 보입니다. 조선은 한양도성을 천자문 순서로 구간을 나눠 관리했는데 生은 42번째, 崑은 47번째 글자로 이 구간의 번호표였고, 이 일대는 경상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부실하게 쌓으면 책임을 물었던 600년 전 '공사 실명제'인 셈입니다.
신당동 골목엔 박정희 가옥이 그대로 서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58~1961년 가족과 살던 집이자 5·16이 모의·계획된 곳으로, 2008년 등록문화재로 등록됐고 2015년부터 무료 개방 중이에요(예약제·월요일 휴관). 1930년대 신당동을 덮었던 문화주택지에서 유일하게 남은 집으로 추정되는 건축사적 표본이기도 합니다.
재계 신화의 1페이지도 이 동네에서 쓰였습니다. 청년 정주영이 배달 점원으로 성실함을 인정받아 1938년 물려받은 신당동 쌀가게 '경일상회'가 현대그룹 창업주의 첫 사업이었거든요. 동대문·광희문 밖은 미곡 거래의 길목이라 일제강점기부터 쌀가게가 모여든 '싸전거리'였고, 그 시절 양곡창고들이 지금 힙당동 카페(아포테케리·심세정)로 변신했습니다.
셀럽과 미디어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 1996년 고추장 CF의 이 유행어는 실화였습니다. 신당동 떡볶이 창시자 마복림 할머니는 중국집 짜장에 빠진 가래떡에서 힌트를 얻어 고추장에 춘장을 섞는 비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며느리들에게도 안 가르쳐주고 전량 직접 만들다가 건강이 나빠진 별세 5년 전에야 전수했다고 며느리가 방송에서 증언했죠. 그제서야 '며느리도 아는 맛'이 된 겁니다.
DJ DOC의 1996년 노래 '허리케인 박(신당동 떡볶이)'의 주인공은 실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당동 떡볶이집에서 뮤직박스 DJ를 보던 박두규 씨 — 고1 때 부모님 가게에서 DJ를 시작해 전성기엔 하루 신청곡 쪽지가 100장을 넘었대요. 8090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집집마다 DJ박스를 두고 사연과 신청곡을 틀어주던 '떡볶이+DJ' 문화의 발상지였습니다.
셀럽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효리는 2022년 약수역 8번 출구에서 도보 500m쯤 신당동 안쪽의 4층 빌딩을 37억 5천만 원 전액 현금으로 매입했는데, 계약일이 본인 생일이라 '자신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화제가 됐죠. 그리고 금돼지식당은 BTS 정국의 단골로 알려져 해외 팬들 사이 '성지'가 된 곳 — 관광객들이 캐리어를 끌고 와 줄 서는 이유가 삼겹살 때문만은 아닌 셈입니다.
의외의 사실들
약수역 환승통로 한복판에 화장실이 있는 거, 눈치채셨나요? 3호선(지하 2층)이 먼저 생기고 6호선(지하 3층)이 나중에 뚫렸는데, 당시 역 위에 얹혀 있던 약수고가차도 때문에 곧장 아래로 통로를 낼 수 없어 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우회 구조가 됐고, 그 바람에 통로 중간에 화장실이 자리하게 됐습니다. '범인'이었던 고가차도는 2014년 철거돼 사라졌지만, 우회 구조는 그대로 남았죠.
옆 정거장 버티고개역은 심도 45.75m로 서울 시내 서울교통공사 역 가운데 가장 깊습니다 — 아파트 15층 높이를 내려가는 셈이에요. 그 덕에 2004년 국내 최초의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역이기도 합니다. 지하 2~3층 사이 42m 경사터널을 케이블카처럼 비스듬히 오르내려요.
약수동이 속한 중구는 서울 25개 구 중 면적이 가장 작고(9.96㎢) 주민등록 인구도 가장 적지만(약 12만 명), 주간인구 비율은 182%로 서울 1위입니다. 낮의 을지로와 밤의 약수동이 완전히 다른 동네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숫자로 증명되는 셈이죠.
황학동 도깨비시장이 '도깨비'가 된 데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집니다. 낮에 인산인해였다가 어두워지면 썰물처럼 사라져서라는 설, 그리고 파는 물건들이 도깨비 물건처럼 낡고 오래된 것들이라는 설. 아무리 망가진 고물도 상인 손만 거치면 감쪽같이 새것이 된다는 뜻도 담겨 있다니, 도깨비방망이 같은 시장인 셈입니다.
동네 사람만 아는 팁
남산 벚꽃은 남산 북측순환로에서 보세요. 차량이 차단된 보행자 전용길이라 벚꽃 철엔 도로 한복판을 걸으며 벚나무 터널을 통째로 즐길 수 있고, 국립극장 쪽 입구가 약수동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야경은 매봉산 팔각정 — 버티고개 위 해발 170m 매봉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서울숲과 남산을 잇는 걷기 코스의 중간 기착지라, 약수동에선 슬리퍼 신고 갈 수 있는 공짜 전망대예요.
전설로 표기한 이야기는 문헌·구전으로 전해지는 것들이에요. 나머지는 공식 자료와 언론 보도로 교차 확인했지만, 개방 시간 같은 운영 정보는 방문 전 다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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